2026.04.25 · Artist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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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ist Must Remain Consciously Awake
The artist has always stood at the boundary between inside and outside: close enough to speak the language of an era, never so absorbed as to stop reflecting it.
예술인은 처음부터 거울이었다. 부족 단위로 살아가던 시절, 불 앞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이 있었다. 동굴 벽에 짐승을 그린 사람, 죽은 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고, 감정을 형태로 옮겼다.
시대가 흘러 신전이 세워지자 예술인은 제의의 언어를 다듬는 사람이 되었다. 왕이 등장하자 궁정의 기록자가 되었고, 도시가 만들어지자 광장의 이야기꾼이 되었다. 인쇄기가 생기자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자가 되었고, 카메라가 나타나자 시간을 붙잡는 자가 되었다. 도구와 자리는 계속 달라졌지만 하는 일의 뿌리는 바뀌지 않았다. 집단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거울을 들어주는 일.
예술인의 자리는 처음부터 안과 밖의 경계에 있었다. 속해 있지 않으면 그 시대의 언어를 쓸 수 없고, 완전히 흡수되면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없다. 너무 안에 있어서도 안 되고 너무 밖에 있어서도 안 되는 자리. 예술인이 의식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 오래된 자리에서 비롯된다. 거울이 흐려지면 사람들은 자기를 볼 수 없다. 거울이 흐려지는 첫 번째 이유는 언제나 거울이 자기가 거울임을 잊은 순간이다.
사람은 자기가 고른다고 믿는 것들의 대부분을 누군가 이미 골라놓은 선반 위에서 고른다. 어떤 파도가 들이쳤다 빠지고 다른 파도가 밀려들어도 해변의 모양이 바뀌었을 뿐 바다는 같은 바다다. 공기의 방향이 바뀌면 사람들은 새로운 공기를 마신다고 믿지만, 여전히 한 방향의 바람을 들이쉬고 있을 뿐이다. 바람의 이름만 바뀔 뿐, 바람이 내 쪽으로 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물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 이 판단, 이 감정은 정말 내 안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속한 자리가 가장 보상해주는 모양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간 것인가.
이 질문은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사실’로 유통되는 것들의 상당수는 사실이 아니라 합의다. 사실로 취급되는 순간 그것은 의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고, 의심의 대상이 아닌 것들 위에서는 진짜 질문이 자라나지 않는다. 안전벨트를 매는 것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체벌을 받지 않는 것도, 가정폭력이 한 집안의 사정이 아니라 하나의 폭력으로 인정받은 것도 모두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당연한 것’의 얼굴을 하고 있던 풍경들이 지금은 반대 방향에서 당연해져 있다. 오늘 내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다음 시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알 수 없다.
이 사실 앞에서 열려 있는 태도는 예술인의 윤리처럼 여겨지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열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짜 열림은 편안하지 않다. 내가 쌓아온 판단 기준 하나가 무너질 수도 있음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기 점검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 자체가 자주 새로운 종류의 잠이 된다. 잠에서 깬 사람은 ‘나는 깨어 있다’고 자주 말할 필요가 없다.
깨어 있는 나와 깨어 있지 못한 타인을 가르는 감각, 알아차린 자와 알아차리지 못한 자를 구분하는 시선. 이 구분이 생기는 순간 거울이 되려던 예술인은 어느새 설교자의 자리에 앉는다. 설교자는 더 이상 비추지 않는다. 가리킬 뿐이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는 과거 어느 시점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는 타인과 다르다’고 믿었던 것과 똑같다. 자리가 바뀌고 이름이 바뀌어도 자기 확신의 형태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가장 위험한 잠은 눈을 뜨고 자는 잠이고, 그 잠의 가장 정교한 형태가 ‘나는 지금 깨어 있다’는 확신이다.
이 잠에서 빠져나오는 자리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낮은 자리다. 자기 부족함을 인정하는 자리. 사람들은 용기를 외부를 향한 행동으로 생각한다. 맞서는 것, 드러내는 것, 지키는 것. 그러나 발전은 멀리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볼 수 있게 되는 일에서 시작된다.
예술인은 오랫동안 집단의 거울이었다. 불 앞에서, 신전에서, 광장에서. 매 시대마다 자리와 도구는 달라졌지만 하는 일의 뿌리는 같았다. 집단이 차마 보지 못하는 것을 비추고, 잊으려 하는 것을 기억하고, 언어로 담기지 않는 감정을 형태로 옮기는 일. 그 역할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거울이 비추어야 하는 풍경은 훨씬 복잡해졌고, 거울 자신이 어떤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예술인은 의식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술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내가 나라고 믿었던 것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내가 속한 자리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일이다.